준결승에서 마무리하다
2023년 아시안컵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준결승전에서 요르단한테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도중 패색이 짙어지자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감독과 선수들을 비판하는 글들로 도배되고 있었다. 나도 스포츠 중계를 볼 때 엄청 집중해서 보는 성향이라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안 그러려고 엄청 자제하면서 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오늘 경기는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다. 지금까지 본 국가대표 경기 중에 감히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게임이지 않았나 싶었다. 유효슈팅 0개. 어쩌면 지는 게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경기력을 펼치고도 또 한 번 운(?)이 따라줘서 승리한다면 그 또한 낯 뜨거운 부끄러운 승리였던 게임이었다. 그렇지만 감독이나 선수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물론 보는 내내 특정 선수들이 눈에 거슬렸던 건 사실이다.)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뉴스나 SNS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기가 겁났다. 사실 지금 오후까지 대표팀 주장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보지 않고 있다. 이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손흥민 불쌍하다. 또 운다. 등의 글들을 봐서 괜히 마음이 아프다. 요새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고 있어서 그런지 더 손 선수에게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오늘 게임은 국가대표가 걸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의 포인트일 뿐이다. 속상하지만 경험 삼아 교훈 삼아 더 나은 팀으로 나아가면 된다.
오랜만에 기대했던 아버지와의 시간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 바로 결승전의 일정이었다. 만약 오늘 준결승에서 승리했다면 결승전은 이번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였다. 바로 우리 설날이었다. 우승했다면 우리나라 설 아침에 우승의 기쁨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설은 결혼 후 처음으로 설 전날에 본가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고 하루를 잘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축구에 매우 진심이신 아버지와 7년 만에 함께 축구를 볼 수 있었던(그것도 아시안컵 결승전을)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준결승에서 요르단을 잡고 결승전에서 아버지와 치킨을 뜯으며 즐거운 시간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 점이 무산된 게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남의 나라 결승전 볼 것도 아니고 말이다. 축구는 없어졌지만 오랜만에 본가에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없어진 건 아닌데.
아무쪼록 다시 일어서길
아무쪼록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쏟아지는 비난이 마땅한 질책이라면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로 달게 받으면 되지만 목적도 의미도 없는 선수들에게 비수와 상처가 되는 악플들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라고 전세계의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게임에서 이런 플레이를 하고 싶었을까. 그들도 사람이다. 한일전 결승을 기대했었지만 한국도 일본도 빠진 이번 대회는 이제 나한테는 별 의미가 없다.
부록
본가에서 부모님과 같이 봤던 마지막 게임이 어떤 경기였나 찾아보니 또 킹 받는다.(캘린더와 구글포토에 꽤 많은 기록이 남겨져있다)
2016년 1월 30일에 부모님과 치킨을 먹으면서 봤던 영상이 있다. 그 때도 아시안컵 U-23 결승전인데 한일전이었다. 권창훈 선수가 선제골을 넣고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2:3으로 역전패 당했던 날이다. 이걸 보고 나니 이번 준결승 탈락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구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