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호주에서 회사를 다녔던 2009년 12월부터 시작해서 지난 2021년까지 약 12년을 자차 출퇴근을 했다. 그 사이 직장을 네 번 옮겼고 자동차의 종류도 네 번이 바뀌었다. 네 군데의 회사 모두 회사 주차장이 있거나 회사에서 주차비를 지원해 주어서 편하게 출퇴근을 했던 것 같다.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자차 출퇴근이 끝이난 건 지난 2021년 현재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부터이다. 이직 전에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회사를 찾을 때 이전과 다르게 회사의 위치가 큰 고민거리가 됐다. 이전에는 in 서울에 지나치게 동쪽 끝만 아니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사 후에는 강남도 쉽지 않은 거리가 되어 있었다.
이직을 알아볼 당시 현재의 회사는 관악구에 위치하고 있었고 자차 출퇴근이 된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회사 복지 중에 주자창 지원이라는 내용이 있었고 자차 출퇴근은 이렇게 또 이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입사 과정은 순조로웠고 출근을 하게 되었지만 출퇴근에 이슈가 있었다. 우선 주자창 지원이 무료는 아니고 회사 건물에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월 주차도 아니었고 하루하루 결제하는 일 주차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보다 더한 이유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나 자차로 출근이나 도착하는 시간이 비슷하거나 자차 출퇴근 시간이 오히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은 평균 왕복 3시간, 편도 1시간 30분 이상이 걸렸다. 막막했다. 회사는 괜찮았지만 편도 출근 시간이 1시간30분 이상이 걸리고 자차 출퇴근도 못하고 왠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렇게 나는 13년 만에 자차 출퇴근에 마침표를 찍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왕복 3시간짜리 출퇴근 라이프를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회사는 노트북을 제공하는데 재택근무 비중도 높아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했다. 그것도 무려 16인치짜리 큰 맥북 프로. 그렇게 막막하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기를 2년이 지났다.
지금 나에게는 그 출퇴근 3시간이 매우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어있다. 어느 정도냐면 만약 나한테 가까운 회사로 이직할 기회를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3시간 때문에 이직을 고민할 정도라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이 바뀐 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출퇴근을 하는 그 3시간은 이제 힐링과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업무에 필요한 개발서적이나 열정을 자극할 수 있는 동기 부여용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육아를 하면서 집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주말에 책을 읽는다고 외출을 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회사에서 업무시간이나 휴게시간, 점심시간에 책을 읽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이어폰에 잔잔한 연주곡 하나 틀어놓고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도 편해지고 출근 시간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강의도 마음껏 본다. 예전에 자동차로 출퇴근할 때도 인강을 틀어놓고 운전하던 시절이 이었다. 물론 화면은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듣는 정도로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을 했었다. 결론적으로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운전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출퇴근 3시간에 책을 읽고 인강까지 볼 수 있는 건 항상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개발자한테는 너무 귀한 시간이지 않을까 한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당연히 눈이 감기고 졸음이 온다. 이럴 때 맘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멀면 멀수록 출퇴근 시간이 길면 길 수록 좋다. 버스 한 번, 지하철 두 번을 갈아타는 동안 눈치 싸움에서 승리했을 경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만 피곤할 때 잘 수 있는 것도 대중교통의 특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자기 계발적인 측면에서도 좋지만 그냥 시끄러운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기분 내기에도 좋고 친구들 SNS 구경하기에도 좋다. 기분이 많이 업 되면 에스컬레이터 안 타고 계단을 두 계단 씩 오르면서 하체 운동 한다고도 생각한다. 정말 많이 운전하는 걸 좋아했고(지금도 운전을 좋아한다) 20대 때 지옥철 출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랬던 내가 매일 아침 백팩에다가 16인치짜리 맥북 프로, 단백질로 직접 싼 도시락, 닭가슴살 두 봉지, 읽을 책 한 권은 언제나 들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인강용 아이패드도 한 권 넣어 다니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무래도 어깨가 욕할 것 같다.
어느 날 새벽 러닝을 하면서 들었던 한 유튜브에서 지금 나와 비슷한 사연을 소개해 주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들의 추운 새벽 출근길을 이야기하는 방송이었는데 누가 보면 이른 새벽 먼 길을 힘들게 향하는 아버지들의 출근길 같아 보이겠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값진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쉴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각자만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그러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어느새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나의 이야기였다.
동료들도 너무 멀리 다니는 게 힘들지 않냐며 걱정해 주는데 난 사실 힘들지 않다. 어느 날은 약간 가방이 무겁고 어느날은 약간 가방이 가벼울 뿐 발걸음의 무게는 항상 같다.
우리 회사 복지 중에 근속 2년이 되면 대중교통비를 지원해 주는 복지가 있다.
나는 이제 2년 차가 다 되어가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한 3시간 출퇴근 시간이 더 좋아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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