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JTBC 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었다. 풀코스 도전 한 달 전인 서울레이스에서 하프마라톤을 뛰다가 무릎 부상이 있었다. 중요한 시기에 LSD 한 번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풀코스에 나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었다. 더 다치면 어쩌려고 저 상태에서 나갔었나. 어찌 됐던 34K 부근에서 퍼져서 4시간 38분 기록으로 겨우 들어왔다.
이번이 두 번째 풀코스 도전이고 서브 4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지독했던 이번 여름에 장거리를 많이 달리지 못했다. 20K만 달려도 죽을 뻔 한 더위였다.
9월까지도 너무 더웠고 10월이 되서야 약간 선선해져서 35K, 31K, 25K 정도를 3~4회 정도 달렸다.
5~20K 정도는 꾸준히 달렸지만 월 마일리지는 150~200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작년에 비해서 올해는 딱히 이슈가 될만한 부상도 없고 그래도 어느 정도 LSD는 했다는 생각에 잘하면 서브 4를 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이 생각이 무서운 게 서브4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목표했던 서브4를 성공하기는 했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다. (2부에서 썰을 조금 더 풀어보려고 한다)
페이스 메이커의 등장
대회 5일 여름 앞두고 마라톤 대회 경험이 많은 서브 3에 가까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대회의 목표 시간을 묻더니, 본인이 페이스메이커를 해도 괜찮겠냐는 전화였다.
가까운 사이이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친구가 왠지 나를 서브 4 주자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당일 아침 출발지에서 만났다.
나는 D그룹이었고 그 친구는 B그룹이었다.
하위 그룹에서 뛰는 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D그룹에서 출발했다.
출발, 5분 30초 페이스로 밀자
처음부터 5분 30초 페이스로 갈 수 있을때까지 최대한 가자는 게 전략이었다.
최근 훈련때 20K 이상은 5분 중반 페이스가 좀 힘들었기에 부담이 되는 페이스였다.
하지만 페이스메이커의 말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고, 5분 10~40초 사이 페이스로 최대한 달렸다.
컨디션은 괜찮았다. 우려했던 감기 기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게 힘이 든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13K 부근에서부터 이미 심박수가 170을 넘었다.
그리고 하프 지점을 통과하면서 다리가 무거워진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페이스메이커가 옆에서 함께 달리니 페이스 체크를 좀 더 타이트하게 할 수 있었고 5분 30초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30K 마라톤의 시작
30K 지점을 통과하면서 심박수는 175까지 올랐다. 그리고 본격적인 마라톤이 시작됐다.
너무 힘들어서 못 뛰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페이스메이커한테도 말했다. 너무 힘들다. 못갈 것 같다. 걸어야겠다..
그 때마다 페이스메이커는 "속도는 늦춰도 되지만 멈추진 말자"고 했다.
"거짓 아픔이라고 생각해!! 대회 끝나고 후회한다!!" 등 내가 멈출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맞다. 너무 힘들었지만 서브 4를 하고 말겠다는 생각과 그걸 도와주려고 옆에서 같이 고생하고 있는 페이스메이커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였다면 10번 넘게 멈췄을 것 같다.
처절했던 레이스
35K 지점을 통과하면서 부터는 기억도 희미하다. 급수, 스펀지 지점이 나올 때 마다 페이스메이커는 나보고 "넌 계속 가! 내가 물 가져올께! 내가 스펀지 가져올께!" 하면서 급수 포인트를 혼자 왔다갔다 했다. 말할 수 없게 너무고마웠다.
38K부터는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져 6분대를 넘어갔다. 내 생각에는 마지막 5K가 가장 힘든 것 같다.
항상 밥 먹는 듯이 달리는 그 5K라서 그런지 5K 남았다고 생각하면 아 그 30분 금방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리 상태가 그렇지를 못하다. 천근만근이 되어 있는 다리로 마지막 5K를 달리는 건 정말 너무 힘든 것 같다.
40K 표지판이 보이면 아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앞자리가 4가 되었다. 마지막 2K다. 페이스는 6분 29초. 심박수는 179가 찍혔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울고 싶었지만 페이스메이커가 옆에서 화이팅을 외쳐주고 있어서 도무지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마지막 2K 직선 주로.
막연히 보이지 않는 주로 끝에 피니쉬 라인 같은 게 흐릿하게 보였다. 저기인가보다 생각하지만 너무 멀다. 보이기는 하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달려가지.
'너무 멀어... 너무 많이 남았다...'
다리는 천근만근, 정신력도 고갈..
말 그래도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었다.
'가자... 가야지...'
양 옆으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도착 지점 포토분들이 연신 셔텨를 눌러댔다.
'왔다... 다왔다...'
피니쉬를 통과 했다. 바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결승선에서 그래도 조금 떨어져야지 한 50m 더 달렸을까 바로 드러누워 버렸다. 호흡이 거칠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아 끝났다...'
서브 4 한건가 생각이 들었지만 기록을 생각 할 수 상황이 아니었다.
'서브 4 하려면 이렇게 뛰어야 한다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내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일단 다시 일어나 페이스메이커와 뜨거운 하이파이브를 하고 격렬했던 4시간의 마라톤을 마무리 했다.
3시간 57분 47초
그렇게 처절했던 서브 4는 성공을 했다.
훈훈하게 마무리 되면 좋았을 서브 4 도전기가 메달과 간식을 받고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 갑자기 하늘이 돌기 시작했다.
한 스탭분께서 내가 이상함을 눈치 채시고 "선생님 괜찮으세요??" 물었다.
안 괜찮았다.. 얼굴 전체에 마비감이 생기고 입술이 떨리면서 양팔과 종아리, 허벅지에 쥐가 올라왔다.
쥐는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도무지 풀어지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얼굴에 마비가 올라오니까 너무 공포스러웠다. 스탭분께서 의료진을 황급히 불렀고 난 눈을 뜰 수 없어서 상황을 보지는 못했다. 소리와 촉감으로만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 다리! 종아리!" 하면서 소리쳤다.
입 주위에 무언가가 닿았고 입을 감쌌다.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했다.
팔과 다리에 파스를 뿌렸고 쓸어내리는 듯한 마시지를 했다.
체내 혈중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과호흡 증후군이라고 설명했다.
이산화탄소를 재흡입 시키고 있다고 했다. 통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호흡했다.
순간순간 쥐가 올라오고 내려오고 반복했다. 진짜 몸이 어떻게 되는거 같았고 무엇보다 얼굴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분.
뭔가 호흡이 진정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극심한 오한이 왔다. 팔과 다리에 청색증이 보인다고 했다.
스탭분께서 자켓을 벗어주셔서 덮고있었고 점차 상태가 회복됐다.
과호흡 증후군,
검색해보니까 관련 자료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마라톤 사례의 글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풀코스 마라톤이 결코 만만한 종목은 아니고 주자들 모두 엄청 힘들고 고통스러워 한다. 하지만 과호흡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의료진 선생님께서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으셨다고 대단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내 몸 상태는 서브 4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서브 4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 가며 억지로 만들어 낸 서브 4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목표했던 서브 4는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내 몸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든다.
그래서 다음 풀코스 목표를 온전한 상태로 서브 4로 들어오자는 목표가 생겼다. 다음 번에 서브 4를 할 수 있을꺼라는 확신을 할 수 없지만, 더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어 온전한 호흡으로 4시간 안에 완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아찔했던 순간에 최선을 다 해준 강은지 물리치료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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