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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어머니의 머리에 나의 흉터가 내려앉았다

by 무벅 2026. 5. 11.

거울을 볼 때마다 뒷머리를 비춰보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뒤통수 한구석에 자리 잡은 탈모는 내내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행여나 보일까 신경을 곤두세웠고,

모자도 더 자주 써가며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찝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근 들어 그 고민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다.

비어있던 자리에 거뭇한 온기가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아내도 "오, 머리 좀 자란 것 같은데?"라며 나를 기분 좋게 부추겼다.


하지만 지난 주말,

오랜만에 자리한 가족 모임에서 나는 무거운 마음을 느꼈다.

가까운 인천 앞바다로 노을 구경을 가서는,

예쁜 풍경에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카메라에 찍힌 사진마다 내 눈에 박힌 것은 어머니의 정수리였다.

 

한 번도 비어본 적 없던 그 고왔던 머리카락 사이로 낯익은 살결이 비쳤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딱 내 뒤통수에 있던 그만큼의 공백이 어머니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단순한 노화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 했던 그 스트레스를 어머니가 몰래 가져가 대신 짊어지신 것처럼 느껴졌다.

 

자식의 흉터가 아물어가는 동안,

당신은 그 흉터를 당신의 몸으로 옮겨 심으신 게 아닐까 하는 못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계속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어머니의 뒷모습은 예전처럼 무성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쩍 야위어버린 어머니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는다.

자식의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바꿔 가시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오늘따라 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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