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 하프 마라톤 코스를 달려보았다.
코스는 김포 고촌(집)부터 검암역 부근(10K 반환점)까지 달렸다. 코스는 아라뱃길을 달려서 오르막길이나 급경사 없는 쾌적한 코스였다.
단지 걱정 되는건 나의 체력뿐이었다.
처음으로 하프 기록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넋 놓고 설렁설렁 달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20K를 좋은 기록을 내보겠다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무리해서 달릴 수도 없다. 적당히 타협을 본 게 5분 30초 페이스를 유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K의 디테일한 시간도 계산하지 않았고 평균페이스가 5분 30초대라면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러닝화는 두 켤레를 주로 신고 있는데 하나는 알파플라이 다른 하나는 인피니티런이다. 발이 편한 건 인피니티런 속도가 빠른 건 알파플라이이다. 속도가 많이 빠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록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알파플라이를 선택했다.
(알파플라이를 신으면 나도 모르게 기록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코스로 10K까지는 달려보았기 때문에 반환점 기준으로 편도 5K 지점까지는 가본 적이 있는 코스다.
익숙한 스피드와 익숙한 템포로 달렸다. 무리하지 않은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는데 NRC가 평균 속도 5분 10초대라고 말해줬다.
나쁘지 않는 심박수인데 5분 10초대라면 살짝만 스피드를 내면 4분대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평균 속도를 올려가면서 달렸다.
6K 부근 계양대교 밑을 지날 때 러닝 동호회로 보이는 여러 러너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5K 동네 짧은 코스로만 달려서 오가며 스쳐 지나가는 솔로 러너들을 주로 마주쳤지만 오늘처럼 적어도 10명 이상의 러너들을 한 번에 본 건 처음이었다. 러닝화도 번쩍번쩍했고 착용하고 있는 옷들도 화려한 색상이 눈에 띄었다.
마음 같아서는 반가운 마음에 손이라도 흔들고 싶었지만 시크한 느낌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금부터는 정말 처음 달려보는 코스다. 확실히 계양대교를 지나니까 본격적으로 인천으로 접어드는 코스라서 그런가 자전거 도로 폭도 줄어들고 보행자 길도 좁아졌다. 그리고 인천까지 가겠다는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지날 일이 없을 것 같은 길이 나왔다.
지금부터는 그냥 달리면 되는구나 생각했다.
9K 부근에 왔을 때 차로 이동할 때만 보던 아라폭포까지 와있었다. 아라폭포까지 뛰어서 오다니 신기했다.
아직 초봄이라 폭포를 가동할 때가 아니라서 폭포수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여름에 시원하게 폭포수가 내려준다면 러닝 중에 맞이하는 꽤 근사한 풍경이 분명하다. 자 이제 1K만 더 가면 10K 반환점이다.
아라뱃길의 풍경은 7시 정도의 이른 시간인 데다가 위치 또한 김포에서 인천으로 넘어가는 장소이다 보니 사람도 없었고 스산하고 조용한 새벽의 경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완연한 봄 날씨였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 예보가 있는 날씨였어서 꽤 쌀쌀했다. 가벼운 바람막이와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출발 전에 장갑을 끼지 말까 생각했던 내가 어이가 없어서 살짝 실소가 나왔다.
반환점에 도착했다. 달리는 동안에는 잘 몰랐는데 반환점에서 잠시 멈추니 쌓였던 피로함과 지친 체력이 느껴졌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평균속도는 5분 2초대로 줄어있었다. 처음 20K의 반환점이라 기념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한다.
10K나 왔다니 어떻게 돌아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항상 처음 갈 때가 멀지 돌아오는 길은 가깝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평균속도를 4분대로 내리기 위해 음악을 경쾌한 템포의 클럽음악으로 바꿨다. 자연스럽게 신이 나며 발걸음도 빨라진다. 그때 내 뒤에서 나를 빠르게 앞지르는 러너 두 명이 있었다. 아까 봤던 러너 모임 분들이었다. 그 두 분은 앞뒤로 서서 달리고 있었는데 나를 앞지르는 순간 일단 포스가 평범하진 않았다. 나도 나쁘지 않은 페이스였는데 저 속도로 제친다고? 물론 출발점은 내가 6K를 달린 부근에서 출발했으니 나보다 6K는 덜 달린 체력이겠지만 그래도 빠르다. 잘 됐다 생각하고 나도 속도를 올려 그 두 명의 러너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바로 포기했다.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1K도 못 가서 체력이 바닥날 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바로 내 페이스를 찾았다. 그런데 순간 스피드를 올리는 바람에 평균속도가 4분 59초로 내려와있었. 12K 부근이었다. 이 속도로 유지만 하자.
15K 부근을 지날 때쯤 이제 진짜로 힘들구나 싶었다. 평균속도는 계속 4분 59초였다. 시간이 줄지도 늘지도 않고 있으니 내가 조금만 속도를 줄인다면 바로 5분대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1초의 싸움이었다. 1초를 늘리지 않게 계속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15K쯤 되니까 다시 나의 익숙한 코스로 진입했다.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힘내자 생각했다. 그리고 별별 잡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이걸 계속 뛸 수 있을까. 풀코스는 도대체 어떻게 뛰는 거지. 말이 되나?
그리고 17K 부근에서 다리 풀림이 느껴졌다. 잘못 헛다리 짚으면 삐끗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20K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다시 음악을 바꿨다. 평소 새벽에 달리기를 할 때 듣는 한글의 가사가 나오는 힙합곡을 틀었다. (나 혼자 생각하기로는 나의 등장송? 아침 부팅송? 나에게 최면을 거는 노래 같은 거다.)
집중하자 집중!!
평균속도는 4분 56초까지 내려가 있었다. 여유가 있다. 남은 거리는 2K고 내가 약간 속도를 줄인다고 해도 5분대로 늘어나지 않는 거리가 됐다. 다 왔다. (그렇다고 속도를 줄일 마음은 전혀 없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딱 20K를 찍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와 씨 이렇게 힘들다고??" 혼잣말을 뱉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수로 기록을 날릴까 봐 러닝 앱을 바로 종료시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리 20K
시간 1시간 39분 10초
평균속도 4분 57초
나의 비공식 첫 하프마라톤 기록이 만들어졌다.
아침에는 엄청 힘들고 두 번 다시는 못 달리겠다 생각했는데 지금 포스팅을 하고 있는 오후에는 언제 다시 한번 달려볼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하프를 여러 번 뛰다 보면 언젠가는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2023.09.01 - [삶/운동] - 김포-인천 러닝 코스 아라뱃길 사진으로 보는 1년간 풍경 런닝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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