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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운동

2023 JTBC 마라톤에서 첫 번째 풀코스 기억을 남기다

by 무벅 2023. 11. 9.

이래저래 사연 많았던 나의 첫 번째 풀코스 사연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풀코스 마라톤을 뛰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어느덧 달리기 3년 차인데 물론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대회 같은거 말고 그냥 5K만 매일 달리자로 시작했던 달리기였는데 2023년 한 해 동안 10K, 하프, 풀코스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에 관심이 없었던 거 치고는 꽤나 열심히 달리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풀코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원래 하프코스는 뛸 계획이 없었다. 한 달 전 우연히 나가게 된 서울레이스 하프코스에서 이슈가 있었다.

살살 뛰어야지 했던 게 당일 컨디션이 좋고 중간 페이스가 잘 나와서 10K 가까이를 오버페이스로 질주했다.

그리고 얻게 된 무릎과 발톱 부상. 그렇게 정작 풀코스 한 달여를 남겨둔 상태에서 LSD와 같은 장거리주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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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를 앞두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리스크는

 

1. 벌크업 한다고 웨이트 하면서 꽤 많이 늘어난 몸무게

2. 하프 때 얻은 발톱 멍, 양쪽 무릎 외측근 부상

3. 올해 가장 길게 달려본 기록은 34K 3회.(정작 풀코스 거리를 달려본 적 없음)

4. 언덕길 훈련량 제로.(주로 달리는 도로는 최상으로 깔끔한 평지 코스)

 

저런 상태였다. 이런 리스크를 풀코스에 도전한다고 하는 내가 약간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선수도 아니고 일반인이 그냥 일반인답게 달리면 되는 거 아니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도전 해야지. 안 그래도 체력을 요하는 종목인데 오늘이 가장 젊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달려보자. 기안84가 나혼산에서 보여준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기안도 평소에 나름 열심히 달렸다고 하니 뭔가 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나이도 한 살 차이고 몸매도 비슷한 거 같고.

 

그래서 나의 첫 번째 풀코스 마라톤 목표는!!

 

1. 5시간 내 완주!!

2. 감히 운이 따라준다면 서브4!! (내심 서브4를 노리고 있었다)

 

새벽에 잠자고 있는 가족들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

 

 

역시 전날 밤 잠을 설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날 저녁에 미리 사둔 맘스터치 싸이버거 하나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월드컵경기장역으로 향했다.

 

 

 

월드컵 경기장에 정말 많았던 참가자들

 

 

 

JTBC 마라톤은 역시 국내 최대 마라톤 행사답게 아침부터 사람들이 엄청났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비도 오고!! 첫 마라톤의 추억을 쌓기에는 여러 완벽한 조건들이 있었다.

 

6시 정도에 도착해서 8시 출발할 때까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에너지젤을 먹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나는 러닝 커뮤니티가 없어서 거의 이런 대회에 나가면 혼자 이어폰 끼고 있는데 다른 많은 분들을 보면 서로 인사도 하고

밝은 분위기로 대화도 나누고 서로 준비한 음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행사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D그룹 갑니다

 

 

 

그리고 8시.

드디어 풀코스 대장정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가지고 있는 풀코스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D그룹 중간쯤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점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합정 방향으로 가는 주로의 폭이 좁았다. 사람은 엄청 많았고 인구밀도가 엄청 높았다.

시작하자마자 1K도 못 간 지점에서 살짝 패인 도로에 오른쪽 발을 접질렸다. 심한 통증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다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 시작하자마자 이런다고?? 42K를 달려야 하는데 시작부터??"

 

지금은 안 아픈지 잘 모르겠지만 레이스 후반부에 이 발목이 어떤 통증으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긴장하자. 일단 계속 가자.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5분 40~50초 페이스를 유지했다. 꽤 괜찮았던 게 심박수가 안정적이었고 그 페이스 그대로 하프 지점을 통과했다.

컨디션이 좋았고 몸이 가벼웠다. 흥분하지 않기 위해 나를 눌렀다.

 

하프가 넘어가면서부터 뭔가 변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역시 풀코스 마라톤은 레이스가 긴 만큼 이 돌발 변수들이 크게 작용할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름 돌발 변수에 대비한다고 했지만 풀코스 런린이가 뭘 알까.

 

 

 

달렸던 풀코스 러닝맵 - 35K 부근에서부터 붉어지는 맵

 

 

 

먼저 23K 부근에서 왼쪽 무릎에 감아놓은 테이핑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양쪽 무릎 외측근이 문제였기 때문에 무릎 테이핑이 떨어지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욱 칭칭 감아 놓았지만 결국 테이핑은 야속하게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5K 부근 오르막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준비한 에너지젤을 하나 뜯어먹고는 이 오르막길 함께 뛰어오를 BGM을 골라 재생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폰이 꺼지는 것이다. 평상시에 달리기를 할 때 항상 에어팟 프로를 착용하는데 배터리 지속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를 않아서 이번 풀코스 마라톤을 앞두고 장만한 새 이어폰이었다. 무려 8시간의 배터리 지속시간이라고 했는데 뭐지? 내가 충전을 잘 못 했나? 레이스 반밖에 안 왔는데 이어폰 배터리가 방전이라고?? 이때 멘탈이 크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렇게 음악 없는 고독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달리면서 이어폰을 껐다켰다를 5번은 했다. 결국 이어폰은 포기하기로 하고 길거리 응원해 주는 분들의 소리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알았다. 거리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배번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응원해주시는 걸! 한 30여분한테 엄청난 파이팅을 받았던 거 같다. 정말 감사함이 세게 다가왔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고 평지에서 오른쪽 발목을 한번 더 접질렸다. 원래 발목을 잘 접질리지 않는데 이상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살짝 접질려서 크게 걱정은 안 됐지만 평소에 연습하는 깨끗한 주로와 실제 도로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3K 부근에서 이번에는 왼쪽 운동화끈이 풀렸다. 아무래도 장거리 레이스이다 보니 혹시 몰라 리본을 묶기 전에 두 번을 돌려 감았다. 그래서 리본끈이 풀려도 신발 끈이 아예 풀려서 헐거워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 부분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 운동화 끈을 바로 다시 묶었어야 했던 것 같은데 간당간당한 서브4 페이스였기 때문에 조금의 페이스도 늦추고 싶지 않아서 신발끈이 풀려 있는 채로 계속 달렸다.

끝까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미련하다. 반성한다.

 

37K 정도까지 5분 50초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 선방하고 있었고 체력이 크게 떨어진다거나 너무 힘들어서 못 뛰겠다거나 하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았다. 5K만 더 가면 피니쉬다.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젤을 먹고 나머지 38K부터 4K만 스퍼트를 내서 조금이라도 서브4에 가까워지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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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K 지점에서 슬슬 달려볼까 하는데 순간 무릎에서 뭔가 뚝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프 때 다쳤던 양쪽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잘못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게 한 순간 다 끝나는 거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퍼질 수 없다. 아니 퍼진다는 건 뭔가 체력이 바닥나서 걷는다는 느낌인 것 같은데 나는 아직 확실히 체력이 남아있었다. 달릴 수 있다. 끝까지 달리자. 마지막까지 걷지는 말자.

 

꾸역꾸역 걷는 것도 아닌 뛰는 것도 아닌 뛰는 폼만 하고 있는 걷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무릎이 제발 멈춰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통증이 심해져 왔다. 

조금 더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다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지? 무릎 부상 때문인 건가? 아니면 레이스 막바지에 무릎이 잠긴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너무 아프다.

순간 어제저녁 먹으면서 와이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빠는 가장이야. 절대 다치면 안 돼. 힘들다 싶으면 바로 포기해야 돼. 명심해."

 

맞다. 나는 가장이다.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달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레이스를 멈췄다.

38K 지점이었다. 훈련 때도 제일 길게 달려본 게 34K다. 그 이상은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아쉬웠다. 그런데 바로 받아들여졌다.

훈련량이 부족했다. 무릎도 정상이 아니었다. 몸무게도 많이 나갔다. 준비가 부족했다. 

그래 이 몸뚱이로 38K 온 거 고생했다. 나머지 4K는 남은 에너지로 최대한 빠르게 걷자.

 

나를 추월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른 주자들이 부러웠지만 내 무릎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걷다가 뛰다가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페이스는 6분 10~20초대로 내려가 있었다.

 

피니쉬 라인에 가까워져 오고 있는데 거리에서 응원해 주던 한 남자분.

 

"형!! 한번 더 뛰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달려보자 형!!! 할 수 있어!!!"

 

와 잊지 못한다. 어떻게 쌩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저렇게 소리쳐 줄 수 있지?? 고맙다 이름 모르는 동생!!

진짜 그분 덕에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서 한번 더 달리기 시작했다. 800미터 정도 됐던 것 같다.

하나 둘 하나 둘 마음으로 구호를 넣으면서 피니쉬라인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빠!!"

 

소리치는 와이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와이프가 아이를 안고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는데 지금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이다.

 

"와 대단한데?? 나는 오빠 포기할 줄 알았는데 5시간 안에 들어왔네?? 잘했어!!"

 

 

 

 

 

 

너무 벅차고 뿌듯한 감정이 올라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3살 아이도 뭐가 신났는지 엄청 신나 있었고 흥분해 있었다.

기록이고 뭐고 서울을 42K 횡단한 나 자신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할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진짜로 해내다니, 이런 미친 자식! 같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메달은 왜 이렇게 예쁜 건데!

10K, 하프 메달하고 차원이 달라. 42.195라는 숫자도 멋있어 보여.

그렇게 나는 약간 미친놈처럼 풀코스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년 3월 서울동아마라톤을 이미 10K로 신청을 해버려서 자연스럽게 나의 서브4 도전은 2024 춘천마라톤 풀코스로 정해졌다. 

매년 상반기, 하반기 1년에 두 번 마라톤 대회를 나가 볼 생각이다. 

기록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한 운동을 건강한 의식으로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달리기 같은 걸 따로 권해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 풀코스를 달려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어떻게 보면 남의 이야기 같겠지만 천천히 준비해서 꼭 한 번 이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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